복음으로 포장한 독약
복음으로 포장한 독약
최근 기독교계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책은 단연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이다. 이 책이 교인들에게 많은 도전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향력 있는 두란노출판사에서 발행되었기 때문일까? 책을 지은 저자가 위대한 목사이기 때문일까?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인기 있는 이유는 한 마디로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긍정해 주고 잘난 인간이라고 부추긴다.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해 준다. 인간은 누구나 다 이렇게 자기를 인정해 주고 자기 긍정을 부추기는 말을 좋아한다.
인간 긍정이 뭐 그렇게 잘못되었는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사람이라면 누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누군가 찾아와서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을 해주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까 열심히 노력하며 살자고 위로한다면 그것이 큰 힘이 될 것이다. 그것을 뭐라고 꼬투리 잡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다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심각한 것은 자기 긍정, 인간의 희망을 믿음으로 포장하고 그것을 복음인양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조엘 오스틴의 사상이 과연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다.
두 번째 저서인 “잘 되는 나”의 목차를 보자(이 책을 누군가 딸에게 선물을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아까워 내용을 다 읽어보고 싶지는 않다. 읽어봐야 뻔할 뿐만 아니라 목차만 봐도 대충 내용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부-나는 잘될 것이다. 2부-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3부-나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4부-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5부-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6부-나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7부-나는 믿음으로 산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목차만 봐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류의 책들이 과거에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어가 무엇인가? “나”라는 말이다. 나를 복음으로 포장하여 긍정을 부추기고 있다. 한 마디로 나 자신이 신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긍정의 힘에 복음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할 때에는 언제나 “너를 위하여” 혹은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을 항상 하고 있다(출 20:4, 32:8, 레 26:1, 신 5:8, 9:12, 수 22:16, 왕하 17:16, 겔 16:16-17, 호 13:2 등). 자기를 위한 일체의 것이 우상이다. 죄의 권세에 매인 자는 자기를 위한 그 어떤 것이라도 다 우상숭배가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자기 긍정이 아니라 자기 부정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으로 결코 의의 나라에 용납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십자가에 죽어야 마땅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복음은 나의 긍정의 힘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고 하는 자아는 날마다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에 죽어야함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갈 2:20).
조엘 오스틴이 담임하고 있는 레이크우드교회에는 십자가가 없다고 한다. 또한 설교에서 절대 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주간 세상에서 힘들게 살았고 영적으로 지쳐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참으로 인간적인 발상이다. 아니 심각한 마귀적 발상이다. 죄 문제를 빼고 복음을 말할 수 있는가? 죄인의 자기 죽음을 말하지 않고 십자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마귀는 십자가 없이 세상의 영광을 누리게 해 주겠다고 예수님께 제안하였었다(마 4:8-10). 지금도 마귀는 그 전략 그대로 사람들을 자기 수하에 두고자 한다. 그래서 인간들에게는 언제나 세상의 영광은 좋은 것으로 보이고 십자가는 하찮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조엘 오스틴의 이 세권의 책을 통해 십자가를 모를 때 얼마나 죄에 대해서 용감해 질 수 있고 또한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마음대로 반항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저히 왜곡되게 만들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책들은 복음에 섞는 독약과 같다. 아니 독극물을 복음으로 포장하였다. 긍정의 힘을 복음으로 바꾸어 놓는 조엘 오스틴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복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독약을 마시기에 열광하는 한국 교회가 안타까울 뿐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090121_최종수정보완 201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