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민수기 26:1-65 두 번째 인구조사
23강
민수기 26:1-65
두 번째 인구조사
1,2절을 보면, “염병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 조상의 집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무릇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민수기 1장에서 이미 백성을 계수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계수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먼저 1:2,3을 보자.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 그 두 장에 기록된 수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 파 | 1차 계수 (민 1장) | 2차 계수 (민 26장) | 증감 |
르 우 벤 | 46,500 | 43,730 | ▼ |
시 므 온 | 59,300 | 22,200 | ▼▼ |
갓 | 45,650 | 40,500 | ▼ |
유 다 | 74,600 | 76,500 | △ |
잇 사 갈 | 54,400 | 64,300 | △ |
스 불 론 | 57,400 | 60,500 | △ |
에브라임 | 40,500 | 32,500 | ▼ |
므 낫 세 | 32,200 | 52,700 | △△ |
베 냐 민 | 35,400 | 45,600 | △ |
단 | 62,700 | 64,400 | △ |
아 셀 | 41,500 | 53,400 | △ |
납 달 리 | 53,400 | 45,400 | ▼ |
합 계 | 603,550 | 601,730 | ▼ |
△증가(△△가장 크게 증가한 지파) ▼감소(▼▼가장 크게 감소한 지파) |
다시 이스라엘을 계수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것이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법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국가로서 출발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언약의 말씀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군대로 보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군대다운 모습으로 요구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민수기 1장에서 숫자를 계수하는 것은 그것으로 이미 하나님의 군대답다는 것이 아니라 군대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이 어떤 식으로 살아야 군대다운 군대가 될 수 있는가를 광야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장~25장의 내용을 통해 공개된 이스라엘의 원망과 반역 등 모든 모습들은 하나님의 군대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군대에서 제외되는 것임을 경고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1장에서 계수한 군대의 숫자보다 26장에서 계수한 군대의 숫자가 1,820명이나 감소한 것이다.
1절에서 알려주고 있는 바와 같이 “염병 후에” 계수되었다. 염병 후에 계수되었다는 것은 염병이 지나간 후에 살아남은 자를 헤아린 것이다. 52,53절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고 하셨다. 25장에서 살펴본 대로 염병이라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때에 하나님의 언약 정신을 가진 제사장에 의해 진노가 가리워진 자들에게만 약속된 기업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을 떠난 후 아니 애굽을 떠난 후부터 불평과 원망이 연속된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서 불평과 원망이 왜 나왔는가? 그것은 모두가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하는 것 때문이었다. 즉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집착하는 존재가 이스라엘이며 또한 가나안 족속이요 애굽 백성으로 곧 모든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의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63-65절).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애굽에서 나온 자 중에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고 나머지는 광야에서 다 죽었으니 천국가는 사람은 그 수가 많지 않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천국가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이 본문에서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하나님의 약속과 상관없는 모습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자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 이렇게 두 사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예 이스라엘 중에서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고 동시에 이 둘을 통해 어떤 정신을 소유한 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갈렙과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들인가? 아니 하나님께서 어떤 자로 이스라엘 중에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는 자로 남기셨는가? 이들은 세상에 집착하는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늘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어렵고 힘든 나그네 길임을 뼈저리게 체험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다시 말해서 약속의 성취만 바라보았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약속의 성취만 기다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우리 중에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고생이다. 자녀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어려움이 있다. 한 마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다 고생하면서 살고 있다. 사는 자체가 고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정신이 어디에 집착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어렵고 고생되는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더 나은 것을 찾고 요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모든 욕구를포기하고 하늘의 것만 바라보고 거기에 집착된 자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늘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현실에 집착하면서 세상에서의 편안함만 추구하면서 아니 하늘의 것을 바라볼지라도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이기심에서 하늘의 것을 구한다면 그것은 언약 백성의 모습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모습이고 그것은 광야에서 죽어야할 모습이다. 결코 완전하라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하고 늘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 나와지는가 하는 것이다.
군대란 적이 없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싸울 상대가 없는 군대는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 또는 신자 각 개인이 상대해야 하는 적이 누군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비언약 정신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스리는 자기 생존의 정신이다. 이 자기 생존의 정신이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고 바로 내가 그러한 존재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내부를 먼저 공격하셔서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원수인 것을 드러내셨듯이 주님은 오늘 지금 나를 공격하셔서 주님의 원수된 자임을 드러내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하신다. 그가 곧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그러므로 단지 안다는 차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내 힘을 동원해서 내 생존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반역하는 적의 모습을 철저히 주님이 치시도록 기도해야 하며 말씀 앞에 부단히 자신을 세울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비유하면서 디모데후서 2:3,4에서 다음과 같이 교훈하고 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1999.1.31./김영대 http://blog.daum.net/reve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