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민수기 12:1-33 아론과 미리암의 비방
11강
민수기 12:1-33
아론과 미리암의 비방
1절에 보면, 모세가 구스(에디오피아) 여자를 취했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다고 되어 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아내 십보라가 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첩으로 구스 여자를 취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것은 구스 여자를 취했다는 것을 빌미로 삼아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2절).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셨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모세는 인간적인 온유함으로 인해 미리암과 아론의 개인적인 비방에 대해 넘어가려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하여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구름 기둥 가운데로 강림하셔서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신다.
미리암이 주동이 되어 모세를 비방하고 나서는데 아론이 동조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의 비방은 아마도 11:29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세의 말에 근거를 두었는지도 모른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비방하면서 자신들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계시가 자신들에게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와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8절). 여기서 여호와의 형상이란 신약에서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다(고후 4:4, 골 1:15). 그렇다고 모세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구속자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그 광채를 본 자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의 귀하고 영광된 것을 모세에게 보여주시고 나타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내 종 모세”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에 대한 일체의 도전을 막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마디로 모세는 너희와 다르다고 하신다. 다른 선지자는 꿈이나 환상으로 말씀하셨지만 모세는 직접 대면하여 명백히 말씀하셨다고 하신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라는 사람을 아주 특별하게 대우하시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모세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특별하게 대우하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통 사람과 같은 존재인 모세를 불러서 하나님의 계시를 담아서 보여주는 그릇으로 사용하실 뿐이다.
따라서 모세라는 한 인간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담겨 있는 계시가 특별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계시하시고 모세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순종하는 것이다. 아론과 미리암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 방식에 대하여 구스 여자를 취했다는 빌미로 모세를 비방했던 것이기에 하나님은 간과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할 때에 원망하는 연약한 모습이 비쳐질 수 있고, 또한 70인의 장로에게 하나님의 신을 허락하셔서 예언을 하게 하셨을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전달하는 중보자의 역할과 계시는 모세라는 그릇에 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에 도전하는 미리암을 문둥병이 들게 하셨고 그것에 대하여 모세가 중보 기도를 하는 형식을 취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13절). 하나님은 미리암을 칠일 동안 진 밖에 가두었다가 다시 들어오게 하신다. 모세의 기도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이스라엘 진에 합류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계시와 그 방식에 도전하는 자는 결코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3:5,6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이렇듯 출애굽 때에 모세에 대한 모든 도전들을 철저히 차단하신 것은 종말의 때에 완전한 중보자 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중심으로 하여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집으로 표현하였듯이 오늘날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충성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만을 자랑으로 삼는 자를 두고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하신다.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집은 건물로 표현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엡 2:20-22).
흔히 이 본문을 가지고 행해지는 대부분의 설교는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도전해서는 안될 것으로 교훈하는 설교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목사에게 도전하여 패가망신하였다는 거짓말을 마음껏 유포하면서 교인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교인들의 정신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본문은 결코 목사에게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그 계시의 방식에 있어서 중보자에 대한 도전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렇게 쉽게 넘어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목사에게는 권위가 없다. 다만 말씀의 권위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권위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떨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복종하게 되는 사람이 성도이다. 비록 목회자가 아닐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고 말씀 안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말씀의 권위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1998.11.1./김영대 http://blog.daum.net/reve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