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고린도전서

05.고린도전서 2:6-16 성령의 일

불편한 진리 2015. 1. 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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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6-16 

성령의 일

 

지금까지 바울 사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이 세상적이며 인간적인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선포했다. 이 복음은 세상 지혜의 관점에서 볼 때 어리석은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메시지나 그것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모두 세상 지혜를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게 보인다는 것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멸시를 당하며 고난을 당하는 그것이 십자가의 복음이 수치스러운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복음의 깊이와 위엄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목숨을 걸고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전하는 복음은 과연 어떤 것인가?

 

6절에서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세상적인 지혜는 어리석은 것이나 십자가는 참된 하나님의 지혜이다. 이 지혜는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로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바울 사도는 이미 2:1,2에서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도 작정하였다고 선언했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라는 철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조해서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22-24에서도 유대인들이 구하는 표적과 헬라인들이 구하는 지혜와 대조하여 성도가 전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선언했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지혜란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6절에 의하면 이제까지 하나님의 지혜는 비밀한 것이고 감추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작정하신 구원의 계획으로서 종말에 지상에 실현될 것인데 미리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어 그들로 하여금 선포하게 하신 것이었다. 십자가는 만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사건이다. 십자가 사건은 최근에 어떤 사람이 고안한 것이거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간적으로 오해하여 우발적으로 생긴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예정하신 것이 역사 속에 드러난 것뿐이다. 그래서 복음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1:4) 하나님의 때에(4:4) 성취된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이 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구원이란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됨에 죄인들이 동참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움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영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광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던 것이다(8).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무지한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라는 이사야 64:4을 인용하여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본래적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으로 증명하고 있다. 즉 죄인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알 수도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의 죄인된 이러한 모습은 과거 예수님 때에만 드러난 것이거나 특정한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모습이다.

 

로마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3:23), 스스로 지혜 있는 척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기를 잘하는 주특기를 가진 존재이다(1:22,23). 오늘날 우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광의 주를 모독하며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비밀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을 바울 사도는 10,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복음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만 알 수 있고 성령께서 보이신 자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형편도 알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고 계신 분은 성령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성령께서는 우리의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 또한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영을 받고 주님의 영에 의해 이끌림을 받고 있다면 우리의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2)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영은 세상의 영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영이다. 하늘로부터 온 영은 하늘의 것을 깨닫게 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바울 사도는 초두에서 이미 고린도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들의 형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은사가 풍족한 것에 대해서도 들었고(고전 1:5) 또한 분쟁이 있다는 것도 들었다(고전 1:11).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 사도는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언, 말 잘하는 능력, 세상의 지혜, 어떤 지도자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이런 것들로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은 오직 성령이 주어져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여기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성경은 공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공부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은혜로 베풀어진 것을 알지 못하는 처사이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공부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왜 베풀어졌는가를 늘 확인함으로 그 영광을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예수 믿는 삶이 어렵다든지 힘들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이며 주어질 수 없는 자에게 베풀어졌다는 사실을 더욱더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성령을 받은 증거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 구원까지도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자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능력, 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란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자들의 모임이다. 모여서 서로 서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들을 가르치며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모임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13). 목사만 가르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교회는 목사만 가르치고 목사가 목회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심방이라는 것도 목사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한다. 주님께서 하시는 목회 안에 있는 자들이 성령을 받은 자들이요 성령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모여서 나누는 것이다. 성도는 목사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영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자이다.

 

그러나 성경을 지식적으로 축적하는 자는 말씀의 지배를 받기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에 말씀을 이용하게 된다. 그래서 13절에서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게 된다고 했고, 성령을 받은 성도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분별하고 판단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14). 그러므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15)고 했다. 즉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제대로 분별하며 살지만 세상은 성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도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16).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2001.1.21 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