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누가복음

48.누가복음 14:25-35 예수님의 제자

불편한 진리 2014. 12. 25. 14:28

 

48/

누가복음 14:25-35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은 큰 잔치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어떠한지를 밝히셨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밝히신 하나님 나라란 스스로 이스라엘이라고 여기는 것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은혜로 채워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잔치에 초대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주인의 일방적인 뜻에 의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은혜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이다.

본문 25절에서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라고 기록하고 있다.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가고자 하시는 십자가의 길에까지 함께 가기를 기뻐할까? 무리들이 주인의 뜻에 의해 채워지는 하나님 나라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가? 예수님은 무리들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신다. 그래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6-27)고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통해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신 것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다. 이런 점에서 무리들은 전혀 예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말씀하시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것의 의미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 자매,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고 버리는 것에 있다. 단지 가족을 돌보지 않고 미워하면 제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서 27절에서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가족을 버리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우리는 쉽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느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의미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본문의 의미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을 좇는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본문이 말씀하고자 하는 초점은 예수님을 좇느냐 아니냐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느냐 안지느냐 하는 것에 있다. 즉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을 좇느냐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무리들은 전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욱 구체적으로 두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시게 된다. 첫째는 망대를 건축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28-30). 둘째는 전쟁에 대한 말씀이다.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31-32).

망대를 세운다는 것은 농장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사를 할 때에도 사람들은 얼마를 투자하여 얼마를 남길 수 있는가를 치밀하게 계산해서 일을 시작한다. 또 전쟁을 앞두고 있는 왕은 자기편의 군사와 상대편의 군사의 수를 헤아려 이길 수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 생각하고 혹 대적할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화친을 맺고자 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어떤 큰 일을 앞두고 반드시 손익 계산을 따져서 일을 하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것에 대해서는 십자가를 진다는 생각을 전혀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런 두 가지 예를 통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인간은 자기 일에는 철저히 계산적이라는 것이다. 손익 계산을 따져서 반드시 이익을 보려고 하는 본능을 가진 죄인이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이 예수님을 좇으려고 한다면 오히려 예수님을 그들을 거부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버리고 죽는 것인데 자기 목숨을 버리는 문제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과 즐거움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는 모습이다.

33절에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자기 소유를 버리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유를 버리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차원에서 예수님을 좇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자기 소유를 버리는 모습으로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는 모습으로 예수님을 좇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을 다 버린다고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도 타의에 의해서건 자의에 의해서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자기 소유를 버리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이나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된 상태, 제자의 모습이 바로 자기 소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는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게 된 자는 자기 소유보다 십자가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성도에게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 안에서 세상의 것들, 내가 붙들고 있는 모든 것들, 내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마지막 자존심까지 놓으며 버리게 만드시는 것이다.

주님은 도무지 초대될 수 없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청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은혜에 젖어 살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은혜가 성도로 하여금 자연히 세상의 것들, 자기 소유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모습으로 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란 단지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을 통해 무슨 유익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의 역할이 드러나게 되는 삶이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34-35). 소금을 여러 가지 용도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맛을 낸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 즉 소금은 맛을 내는 일에 자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란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기 역할을 하는 존재로 부름 받는다는 것이다.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데가 없는 것처럼 스스로 이스라엘이라고 여기고 언약을 주신 이스라엘로서의 제 역할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24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처럼 기존의 이스라엘을 거부하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향해 가는 자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이요 제자임을 밝히신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