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사무엘상 22:1-23 다윗의 피신과 도엑의 고발
사무엘상 22:1-23
다윗의 피신과 도엑의 고발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체 하여 블레셋에서 쫓겨난 다윗은 아둘람 굴로 도망하는데 본문 1절에 보면 “그러므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환란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라고 하였다. 즉 가드 왕 아기스에게 쫓겨난 그것이 다윗이 부모와 형제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고 억울함을 가진 자들이 함께 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울로부터 억울함을 당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여 사울의 정치에 환멸을 느낀 자들로 군대를 형성하고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된다.
400명 가량이 다윗에게 합류하였다는 것은 그가 왕위에 오를 때가 가까이 임박했음을 의미하며 사울에게 피해를 입고 억울함을 당한 자들이 함께 하였다는 것은 다윗에게 주어진 언약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준다. 즉 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피해를 입고 환란을 당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대하여 심판하는 것이 언약의 성격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한나의 찬양을 통해 말씀한 것처럼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자를 일으켜 영광의 자리에 앉히실 일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신 것이다. 다윗이 모압 미스베에 있을 때에 선지자 갓이 그에게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고 권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암시한다.
부모의 안위를 걱정한 다윗은 그들을 모압 왕에게 맡긴다(3-5절). 가드 왕과는 달리 모압 왕은 다윗의 청을 받아들여 도망자 다윗의 짐을 크게 덜어 준다. 모압이 다윗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정치적인 고려도 있었겠으나(삼상 14:47), 다윗의 증조 할머니 룻이 모압 출신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룻 4:14,22). 모압 여인 룻은 나오미와 여호와를 선택하여 모압을 떠났지만 이 모압을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요긴하게 사용하신다. 긴 안목에서 볼 때 나오미가 겪은 일은 다윗을 위한 준비였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드는 동안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극도의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8절)라고 하였다.
그때 사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앞으로 나온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놉에 있을 때에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본 에돔 사람 도엑이었다. 도엑은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동조함으로 왕을 배신했다고 고발한다. 도엑이 이런 고발을 한 것은 권력이 아직 사울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었고(7절) 또한 그 권력의 덕을 보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은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간다. 세상의 힘을 더 두려워하고 누구의 힘이 나에게 더 유익이 되는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알며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의미를 아는 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이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어떤 힘이나 권력도 결코 그들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고백하자!
사울 왕은 도엑의 고발을 듣고 놉에 있는 아히멜렉과 그 모든 친척을 다 잡아오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아히멜렉을 심문하여 대적자 다윗을 도운 사실에 대해 문책했다. 그것은 곧 자기를 대적하여 공모한 역적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그것을 받아들 수 없었다. 도리어 다윗을 위해 한 일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밝혔다. 사울은 호위병에게 아히멜렉을 비롯한 모든 제사장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였으나 왕의 신하들은 제사장들에게 손을 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도엑이 나서서 에봇 입은 제사장 집안사람들 85명을 살해하였다. 그는 제사장들뿐 아니라 남녀노소의 일반인들과 소와 양, 나귀등 동물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사울은 제사장 집안을 처단함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내며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 일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사울의 악함이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니 언약과는 관계없이 오직 세상적 사고방식과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드러났고 그 권력에 빌붙어 세상을 살아가는 추악한 도엑의 모습이 바로 죄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한 죄인들의 사고방식과 정신에 의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희생을 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다윗을 중심으로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환란을 당한 자, 빚진 자, 억울함을 당한 자들이었다. 이들이 다윗에게 모여든 이유는 다윗에게 위로 받기 위해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윗이 그들을 위로해 줄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윗 그도 도망자의 신세였다. 언제 사울 왕에 의해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태였다. 결국 다윗에게 모여든 자들은 위로와는 상관없이 모여든 자들이다. 이것이 언약 안으로 부름 받은 자들의 모습이다.
성경에는 우리 인간을 가리켜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사 42:3)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라고 보아야 하는가? 그런 것이 아니라 죄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심각한 상태인가를 표현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우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말씀이다. 이런 연약하고 초라하며 쓸모없는 존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입혀졌고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사랑을 베푸셨다.
도엑이 놉의 제사장 집안을 살해할 때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에게로 피신하였다. 다윗은 아비아달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22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22-23절).
다윗은 제사장들이 죽은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말한다. 즉 예상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윗이 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가? 아히멜렉에게 다녀간 이후의 일을 예상하였다면 어떤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어렵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서 죽는 것을 불행이라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다윗에게 주어졌고 다윗을 통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실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아히멜렉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언약에 편승된 자로서 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고난과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한다. 신약식으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다윗은 여기서 제사장 아비아달과 자신의 생명을 동일시하고 있다. 다윗의 이 말은 인정에 얽매인 단순한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다윗에게 편승된 아비아달은 이제 생사고락을 다윗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언약을 성취하신 그분과 하나로 연합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감사와 찬양으로 갈 마음이 있는가?
사울은 하나님의 제사장 가문을 멸절시킴으로써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을 천하에 공표하며 극적인 행동으로 보여 주었으나 다윗은 그 가운데 ‘남은 자’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는 일에 더욱 구체적인 발을 내딛게 된다. 사울은 제사장들을 죽이고 자기 나라를 확립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제사장 가문의 남은 자를 통해 언약하신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http://blog.daum.net/reveale 김영대/2012.8.19).▪